‘더 피커’라는 이름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Pick’이라는 단어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까다롭게 고르는 사람’이라는 뜻과 ‘수확하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잖아요. 특히 식재료 같은 경우, 신선한 것들을 찾으시는데 구매하는 현장에서는 아무리 농산물이어도 공산품 사는 것처럼 구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건강한 생산을 방해하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포장되어 있는 모습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싶고, 소비 현장에서도 ‘수확’해 갈 수 있는 경험을 드리고 싶어서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샵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 처음부터 제로 웨이스트 숍을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포장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소비자에게도 옵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돈을 주고 원하는 것을 구매하는 것이 소비자의 권리인데, 이후에 포장재를 치우는 공수가 들어가니까 소비자가 포장재를 거부할 수 있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환경보다는 소비자 권리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했지만, 기획하는 과정에서 ‘쓰레기’라는 단어를 모든 단계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결국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 문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피커는 섬세한 과정을 거쳐 제품을 셀렉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판매하는 제품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나요?
저희는 ‘제품 생애 주기’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산-유통-판매-사용-폐기 이렇게 5가지 단계로 나눠진 세분화 기준이에요. 예를 들면, ‘생산’ 단계에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생산 현장을 보거나 생산 자료를 받아서 체크하고 있어요.
‘유통’ 단계에서는 유통 폐기물은 많이 발생하지 않는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없는지 등 유통 방법에 대해서 협의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이후 ‘판매’ 단계에서는 가능하면 할인과 같은 금액 관련한 판촉 행사는 안 하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어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서는 진행하지 않아요. 이런 판촉 행사가 소비자들이 주관적으로 소비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한 운영정책을 가지고 있어요.
‘사용’ 단계는 제품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제품 생산 단계에서도 구분하고, A/S 제도가 있는지, 없다면 고쳐 쓸 수 있는 키트 같은 게 있는지, 고쳐 쓸 때 참고할 생활 기술은 무엇인지를 고려합니다. 마지막 ‘폐기’ 단계에서는 자원화,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을 생산자들과 협의하고 있어요. 이러한 생애 주기를 고려, 이에 부합한 제품만을 들이고 있어요.
쓰레기가 나오더라도 순환의 고리 안에서 자원화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하는 요소를 신경 씀으로써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더피커의 ‘깐깐한’ 운영 정책 덕분에 많은 분들이 믿고 구입하시리라 생각해요. 이에 연장선으로 식재료 팝업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식재료 팝업은 프로젝트의 확장인가요?
식재료 같은 경우 포장 없이 파는 데에 제한이 많아요. 법적인 제한 사항도 있지만 포장의 유무에 따라 신선도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특히 신선 채소류 같은 경우, 상시 취급하기는 어려워요. 예전에는 레스토랑도 운영하면서 신선 채소를 같이 판매했지만, 레스토랑 영업을 중단하고 나서부터는 신선 채소 상시 취급이 어려워져서 농부분들이 직접 와서 판매하시거나 그날 수확한 것들을 보내주시면 판매하는 팝업 방식을 선택했어요. 이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거의 못 하고 있기는 해요. 아쉽지만 신선 채소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이 팝업 형식밖에 없는 것 같아요.
법적인 제한 사항 때문에 식재료를 상시 취급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제로 웨이스트 숍을 운영하시면서 특별히 힘든 점이 있나요?
사실 모든 게 쉽지 않죠. 제로 웨이스트가 많이 알려졌다고 해도 아직은 비주류의 소비 방식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례가 없어서 어려운 부분들도 많고, 유의해야 하는 법적인 사항 역시 어려워요. 저희가 포장 없이 판매하고 있지만 ‘포장이 없으면 불법이다’라고 명시돼 있는 법적인 사항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환경의 문제에 대해서 경각심을 느끼긴 하지만 소비와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내용이다 보니 단차가 있는 편이에요. 그런 단차를 우리가 어떻게 파악해야 하고 줄여나가야 하는지 등 이런 부분들도 있다 보니 여러 방면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샵의 형태를 넘어 제로웨이스트의 가치를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아무래도 제로 웨이스트가 많이 확산 됐다고 느끼고 있지만, 아쉽게도 너무 대안 제품에 집중되어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대안제품이 많아지는 단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가 굉장히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 좁은 시야의 제로웨이스트만 공유되고 있는 것이 아쉬워요.
좀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생산자의 제로 웨이스트라던가, 사용단계에서의 제로 웨이스트에 관련된 정보도 드리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으면 좋겠어서, 제로 웨이스트의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피커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요?
저희를 그냥 단순하게 일반 기업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정체성을 정립할 때에도 폐기물을 해결한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계속 소비문화를 내세우고 있거든요. 소비문화에 주축들이 있잖아요. 소비자, 생산자, 정책이 가장 주요한 주체들인데, 주체 중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비영리 단체가 아닌 일반 기업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거든요. 기업이 저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희석되길 바라고 있기에 ‘평범한 기업’으로 봐주시길 바라요.
건강한 삶을 위한 나만의 루틴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물을 떠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텀블러도 항상 큰 거를 가지고 다니거든요. 아침에 항상 나가기 전에 정수기로 물 뜨는 것이 매일 하는 루틴인 것 같아요.
추천하고픈 오래된 물건
저는 부채를 되게 좋아해요. 부채에 관심이 많아서 부채 만들어 주시는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사용하는데, 관리가 되게 용이해요. 펼쳐서 쓸 수 있는 부채인데, 종이가 찢어지거나 울면 갈아주시고, 살도 휘어지거나 쪼개지면 갈아주시거나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래서 되게 오래 사용하고 있어요.
나에게 힘이 되는 것
저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긍정적인 힘을 받아요. 2016년도에 처음 시작할 때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생소했어요. 그때는 사례를 만들어보자는 프로젝트성 사업으로 시작했었는데, 그래도 되게 막막했거든요. 막상 시작하니까 호응을 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계속 연결되면서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방향성이 잡히더라고요.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사회문제 자체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해결하면 연결되어 있는 주변의 사회 문제들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어요. 제가 ‘더피커’를 운영하면서 힘든 일이 많다고 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렇게 연결된 지점에서 뜻하지 않은 재밌는 결과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긍정적인 힘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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