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오랜 시간의 취향이 쌓인 공간

- 레몬서울 윤종후, 김보라 대표 -
Now Reading:  
오랜 시간의 취향이 쌓인 공간

레트로 가전제품 집합소, 레몬서울

출판사, 여행사, 감정평가법인이 즐비한 종로 율곡로 한 건물 1204호의 문이 열리면 1970년으로 타임리프 한듯 수많은 레트로 가젯들과 창 밖으로 보이는 1400년대에 지어진 궁이 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디자인적으로 가치있고 흥미로운 레트로가젯을 콜렉팅하여 판매하는 샵 '레몬서울'을 운영하고 있는 윤종후, 김보라 입니다.

레몬서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어요. 직업 특성상 해외 출장을 자주 가게 되어 예쁘고 신기한 것들을 취미로 하나둘 모으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전 회사를 운영하면서 재고가 있음에도 계속 새로운 디자인을 생산해야 하는 시스템이 환경적으로 소모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새로운 기술, 변화된 시대에 밀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플레이어들을 메인터넌스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으로 느껴졌고, 10년 전부터 콜렉팅하였던 시대가 지났음에도 디자인적으로 가치 있는 제품들을 메인터넌스하여 소개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됐습니다.

레트로 가젯만 수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개인마다 본인만의 음악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평소 7~80년대 음악을 좋아하는데, 동시대에 발매된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것이 그 음악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라 생각되어 그 시대의 오디오 플레이어를 많이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7~80년대의 일본의 버블경제로 인해 독특한 발상의 완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이 많이 출시된 시대로 디자인적 관점에서 좋아합니다.


젊은 소비자들이 레트로 가젯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레몬서울'의 제품들은 3~40년 전에 발매된 가젯들이 대부분인데, 시간이 흘러도 아름답고 세련된 디자인이 많아요. 생산이 중단된 희소한 제품인데 디자인까지 아름다우니 더 애착이 생기는 거 같아요. 가젯을 작동해 보면서 느리게 가는 것, 불편함을 통해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새로운 행복을 느끼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구매했던 빈티지 제품은 무엇인가요?

베스탁스(Vestax)라는 포터블 턴테이블이었는데, 희소한 모델은 아니었어요. 외국에서는 이미 10년도 더 됐죠? 바이닐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게. 한국에서는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게 불과 5~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몇십 년 전부터 바이닐 음악을 듣고 디깅하는 문화가 쭉 이어져 왔었어요. 해외 출장으로 일본에 자주 갔었는데 음악을 대하는 문화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처음에는 플레이어가 없는데 바이닐 커버 디자인이 예쁜 것을 골라서 구매했어요. 바이닐도 음악과 앨범커버, 디자인이 접목되어있는 종합체 잖아요. 예쁜 바이닐 커버를 액자처럼 집에 놓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하나둘씩 구매하다가 이걸 한번 들어볼까? 라는 생각에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일체형 포터블 턴테이블을 구매하게 됐습니다.

그 턴테이블도 레몬서울에 있나요?

아니요. 이건 못 팔아요.(웃음) 물건이 희소하고, 소장 가치가 있고, 가격이 비싸고 이런 걸 떠나서 나와 그 물건 사이에 생긴 스토리가 저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제품도 이젠 단종돼서 구하기 쉽진 않지만 제가 처음으로 구매한 턴테이블이라는 의미가 커서 절대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출근해서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일인가요?

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악을 틀기보다는 날씨에 따라 다르게 틀고 있어요. 봄/여름에는 보사노바나 시티팝 위주로 틀고, 가을/겨울은 소울이나 재즈 위주로 틀어요. 여름에 재즈 음악을 들으면 되게 더운데 겨울에 들으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어요. 여름에 듣는 씨티팝은 바다를 가르면서 듣는 것처럼 너무 시원하고 보사노바도 chill한 느낌이 있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고 생각해서 계절마다 트는 음악이 바뀝니다.

레몬서울의 모든 것은 음악으로 시작해 점점 확장되는 느낌이네요

맞아요. 둘 다 음악을 좋아해요. 어릴 때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폼이 바뀌었잖아요. 저희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안 들은 지 5~6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최신노래는 한두 번 듣는 정도? 계속 바이닐을 듣기 때문에 최신노래를 찾아 듣지는 않아요. 사실 저희 취향은 순위에 있는 노래를 다 듣는 스타일은 아니고 7~80년대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 시대의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디깅할수록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음악이 기본 베이스가 되는 엘피바 혹은 관련 샵을 따로 차릴 계획이 있나요?

네. 사실 컨셉은 다 정해졌는데,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적절한 공간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제품을 선별하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시대가 지나도 디자인적으로 가치 있고 기능적으로 재미있는 흥미로운 것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정말 구하기 어려웠던 제품이 무엇이었나요?

가장 애정하는 제품과 동일한 것 같아요. 옴니봇(Omnibot) 제품인데, 저희가 신혼여행으로 런던에 갔을 때 캠든마켓에서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후에 다른 나라에서 어렵게 수소문해 구하게 됐는데, 로봇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 오셔서 시애틀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옴니봇이 레몬에 있으니 엄청 놀라시더라고요. 희소한 물건이기도 하고, 그분과 유쾌한 대화를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얽혀있어 더 애정이 있어요.

꼭 구하고 싶은 제품이 있나요?

되게 구하고 싶은 믹서가 있었거든요. 전에 인터뷰했을 때 아직 구하지 못한 제품이 있냐는 질문에 항상 이 믹서 이야기를 했는데, 일주일 전에 구하게 됐어요! 그래서 현재는 구하고 싶은 새로운 물건이 없는 상태에요. 근데 뭔가 멋진 물건을 보게 되면 저걸 구해야지! 라고 생각하겠죠?

쇼룸을 이곳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레몬서울'에서 청음을 하며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1971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의 고층으로 올라가면 서울 중심 한복판에 자연과 궁이 보이는 공간. 처음 이 공간을 본 순간, 매일 이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이곳이다! 하고 결정했습니다. 2021년을 살면서 1970년대에 생산된 플레이어를 사용하며, 1400년대에 지어진 궁을 보고 있자니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도 좋았고요.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를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겐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최 또는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자연과 레몬의 레트로 가젯들이 연결성을 지닌 주제의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레몬의 첫 전시였던 레코드 284 에서도 식물을 위한 음악을 레몬의 레트로 플레이어와 연결한 내용이었어요. 현재 진행 중인 브랜드 아카이브앱크와 레몬의 콜라보레이션 전시 '잔향'은 바다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를 레몬의 레트로 플레이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따뜻하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과 전력의 공급으로 가동하는 가젯의 조화는 저희에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레몬서울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흥미로운 주제의 전시를 계속해보고 싶어요. 레몬만의 속도에 맞게 한 단계씩 재미있는 전시를 계속하다 보면 레몬의 꿈인 '멋진 작업물'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에게 '세컨핸드(빈티지)'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빈티지는 낡고 오래될수록 멋스러워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레트로는 한번 유행하고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와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빈티지는 오래되고 낡을수록 멋스러워지는 반면 레트로는 깨끗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다른 부분이고요. 레몬서울은 레트로 가젯샵으로 빈티지에 관한 내용보다는 저희가 생각하는 빈티지와 레트로의 차이점에 대해 답변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위와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나만의 루틴

아침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잔 후, 일어날 때가 됐을 때 기상을 합니다. 반려동물 고양이와 아침 인사를 하며 교감의 시간을 갖습니다. 제철 과일을 먹고, 듣고 싶은 바이닐을 골라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합니다.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한 아침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고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과 행복감을 높여줍니다.

추천하고픈 오래된 물건

물건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저의 취향이 그 물건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된 인연, 그 물건과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며 생긴 기나긴 스토리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저에겐 너무 소중해서 추천하고 싶은 물건이지만 오래 사용한 물건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겐 그 의미가 다소 시시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용한 어떤 한 물건을 추천해드리기보다는 독자분들이 애정이 느껴지는 물건을 오래오래 사용하여 각자 자신만의 의미 있는 스토리를 갖게 되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나에게 힘이 되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는 그 순간.

L E M O N(@lemon_seoul) •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