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3년 동안 직장생활만 하다 어쩌다 창업을 해서, 현재 1년째 밑미를 운영하고 있는 손하빈입니다. 에어비앤비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을 몸으로 배웠어요. 브랜드를 온몸으로 느낀 덕에 마케터로 쭉 살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아요.
'밑미'가 어떤 서비스 공간인지 궁금해요.
브랜드명인 밑미는 영문으로 'meet me', '나를 만나다'라는 의미이고, 이곳에서의 '나'는 '진짜 나'를 의미합니다. 저희 서비스는 자신을 잊은 채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나'를 찾아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태어났어요. 이를 위한 다양한 리추얼 프로그램, 콘텐츠, 제품, 그리고 공간을 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추얼(Ritual): 삶을 이롭게 만드는,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셨다고 했는데, 밑미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계기 중 하나는 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에어비앤비를 참 좋아했고, 그 회사가 커지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갭이 커져서 이직을 고려했을 때, 에어비앤비만큼 철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그러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좋아하는 회사의 교차점을 찾기란 어려웠고, 그럴 거면 내가 만들자는 생각으로 밑미를 론칭하게 됐어요.
저도 예전에는 경쟁 지향적인 사회, 커뮤니티에 오래 있었어요. 에어비앤비를 통해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커뮤니티를 만나게 된 거예요. 그곳은 개인의 컬러가 인정되고 다양한 모양새를 온전히 품어주는 조직 문화를 갖고 있었어요. 내가 뭘 하든, 뭘 입든 상관 없이 나를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인생에 엄청난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밑미의 리추얼 프로그램이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정한 자신을 마주해본 적 없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든 필요하지만, 특히 평소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거나 타인의 시선, 비교에 취약하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나'의 중심은 그냥 잡히는 것이 아니에요. 매일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 때 삶에 균형과 중심이 생기죠.
특별히 추천해주고 싶은 리추얼 프로그램이 있나요?
개개인이 처한 환경 및 상황에 따라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다를 거 같아요. 밤에 활동하는 사람인지, 아침에 잘 일어나는 사람인지, 좋아하는 것이 뭔지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나를 돌보고, 관찰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누군가의 추천도 결국 그 사람의 관점이니까, 진짜 나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라 생각해요. 추천 대신 자신의 감각을 믿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밑미의 리추얼메이커가 되는 조건이 있나요?
'리추얼 메이커'라는 단어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에서 따왔어요. 함께 속도를 내는 사람.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적이 있어서 힘들 땐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리추얼을 통해 영감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살면서 리추얼을 많이 해보신 분.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돼요. 그중 하나가 직업이 될 수도 있고요. 이미 그 활동이 사람들에게 많이 증명됐다면 저희가 먼저 연락을 드리거나, 먼저 연락을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궁극적으로 누구든지 자신의 리추얼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준비 중입니다.
리추얼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공통으로 많은 분이 연대감을 느끼시더라고요. 이해 관계 없이 주고받는 칭찬과 공감은 그렇지 않은 커뮤니티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리추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인 것 같아요. 리추얼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다양한데요. 코로나 때문에 우울해서 집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다 걷기 리추얼을 통해 꾸준히 하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 갱년기나 우울을 극복하시기도 하는 등... 무엇보다 밑미의 리추얼을 통해 삶의 갈림길에서 큰 선택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매일의 시간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숲에 위치한 밑미홈은 어떤 공간인가요?
많은 사람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밑미홈을 만들게 됐어요. 밑미가 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온전히 나에게 쓰는 시간이거든요. 밑미의 온라인 리추얼의 오프라인 버전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각각 어떤 공간들로 구성돼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먼저 2층은 따뜻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위로하는 부엌'이라는 공간이고, 3층은 스스로 리추얼 실천할 수 있게 만든 리추얼 방이에요. 저희는 직접 기록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메모를 할 수 있는 노트와 펜이 준비되어 있고,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품들을 구비해 놨어요. 안쪽에는 상담 방도 마련되어 있어서 3층의 이름은 '토닥토닥 상담방'이에요.
4층은 심리 상담이나 요가, 명상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들숨날숨 스튜디오'로 내 중심을 찾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마지막 5층은 '심심한 옥상'인데요. 심심한 시간을 활용하는 게 중요한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에게 쓰는 시간이 자극적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거나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서 만들게 된 공간이에요.
3층 리추얼 방에 있는 책들과 향, LP 등이 기록을 위한 매개체가 되는 건가요?
맞아요. 저도 그랬지만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이 추천해 주고 해보라고 하는 일들을 비판 없이 흡수했던 시기가 많았어요. 하지만 나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리추얼 방에서는 책, 음악, 음식, 식물 등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여 그걸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도구들은 현재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선사합니다.
밑미홈의 어떤 층의 공간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5층 옥상과 리추얼을 할 수 있는 3층 리추얼방을 가장 좋아해요. 방을 꾸미면서 '어떻게 하면 리추얼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기록하고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3층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중심축인 것 같아요. 이러한 콘셉트를 다른 층에도 연결하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리추얼 프로그램이 있었나요?
제가 기획한 '집 가꾸기 리추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제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이 됐어요. 매일 집에 한 곳을 정해서 '내가 이곳을 어떻게 사용했지?'를 생각하며 공간을 치우고 글을 쓰는 리추얼인데요. 집을 부분으로 나눠 정리를 하다 보면 스스로 공간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이더라고요. 집 가꾸기 리추얼을 통해 집은 치우는 게 아니라 정리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실천하고 있는 리추얼은 무엇인가요?
저는 매일 밤 인문학을 읽고 감정 일기 쓰는 리추얼을 하고 있습니다. 늘 타인에게 친절하려 하다 보니, 감정 표현하는 법을 잃은 것만 같은 상황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인문학 책을 읽고 감정이 말랑말랑해졌을 때 감정 일기를 쓰는 리추얼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리추얼을 한 지 2년이 넘은 지금은 이전보다 감정 표현을 솔직히 하고,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됐어요.
밑미의 리추얼 활동을 보면, 연대하며 목표를 이루는 느낌이 들어요. 의도하신 부분인가요?
맞아요. 저희의 미션이 진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개인의 성장과 변화는 나를 끌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쉽게 도달할 수 있거든요. 성장이라는 건 서로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문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제가 경험했던 에어비앤비의 포용하는 문화처럼 말이죠. 이런 문화를 밑미에서 실현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그런지 모든 리추얼을 듣는 분들이 연대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해주시곤 해요.
론칭했을 때와 1년이 지난 지금, 어떤 변화가 있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거 같아요. 사실 1년 동안 커지지 않을 것을 대비해 사무실도 작게 시작하고, '1년간 존버'를 결심했는데요. (물론 지금도 버티기 기간입니다만)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고 계세요. 밑미를 그저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는 변화가 가장 커요. 개인적인 변화로는 밑미 말곤 아무것도 못하기에 개인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를 돌보는 일을 하는 회사라 나를 돌보면서 일합니다.
나를 돌보며 일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나요?
네. 하기 싫은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인생에 대해 자주 생각하다 보니까 일희일비도 덜 하는 거 같고요. 태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두고 있어요. 좋은 멘토들도 많이 만나면서 힘을 얻게 돼요.
진짜 '나'를 찾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진짜 '나'는 '나'를 많이 아는 거예요. 나를 많이 알수록 나답게 살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때 힘든지, 내가 어떤 삶의 방향을 살아야 행복한지... 등 나를 알고 나면 무리한 행위, 남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를 멈추게 됩니다. 에너지가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죠. 저 또한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좋은 직장에 가고 싶었을 텐데, 30대 후반의 나이로 창업하면서 제가 진짜 '나'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균에 가까운 삶도 아니고, 타인이 세워놓은 기준도 아니에요. 내 결정을 믿게 되는 삶을 사니, 행복함을 자주 느끼게 되죠.
건강한 삶을 위한 나만의 루틴
오전에 일어나서 나를 위한 음악 한 곡 듣기, 매일 밤 인문학 독서와 감정 일기.
추천하고 싶은 오래된 물건
저는 워낙 빈티지를 좋아해서 집에 빈티지가 아주 많은 편인데요. 덴마크의 가구 디자이너 한스 올센의 다이닝 테이블을 추천하고 싶어요. 제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가구는 탁자이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의 다이닝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샀어요. 지금 이 시대에는 생산되지 않는 빈티지라 더 소중해요.
나에게 힘이 되는 것
새로운 배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면 알에서 깨는 듯한, 어딘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새로운 것을 사람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책을 통해, 어떤 경험을 통해 배울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껴요.